이번에 일련의 글들을 올리고 난 후, 쪽지나 톡, 전화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많은 연락들을 받았습니다.
어제 밤늦게 제 글을 읽은 한 분과 나누었던 내용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의 생각이 제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의 생각일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그분의 아이는 아직 어리고 언어, 인지에 큰 손상이 없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뭔가 문제점이 있는 듯 싶습니다. 경계성일수도 있고 아스퍼거일수도 있습니다.(사실 둘의 차이는 크게 없고, 혼재되어 쓰입니다) 아니면, 단순한 학습장애일수도 있구요.
어쨌든 이 분은 제게 제 아이의 나이와 현재 상태를 물은 후, 최종적으로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님의 아이는 사회성 기능이 회복됐나요?
아닙니다.
몇 몇 대화가 오간 후, 그 분은 또 묻습니다.
님의 멘토라는 분의 아들은 일반화됐나요?
일반인들과 무리없이 잘 생활하나봐요?
하....아닙니다.
지금 그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모르게 나온 한숨이 무척 무례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구차한 변명을 드리자면,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는데, 어찌됐건 다시 한번 사과 드립니다.
이전에 선배맘과 제가 아는 장애아 엄마들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9살 자폐 2급입니다. 사실 많은 엄마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막상 그 자리에 나온 엄마들은 훨씬 적은 수였습니다.
하긴, 9살, 10살이면 이제 조금씩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기 시작할 때긴 합니다.
어쨌든 우리 자식들과 같은 병을 가진 성인이 뒤늦게 대단히 놀랄 정도로 기능회복을 했고, 내가 보기에는 기적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래도 이 말이 먹힌 엄마들은 궁금증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한 시간 가량, 이것저것 상담한 후 엄마들은 돌아갔습니다.
" 저 엄마들, 나와 내 아들에게 실망했어.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이 내게 뭔가 얻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할 거야"
(멘토는 타인의 심리파악에 놀랄 정도로 능통한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신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실은 타고난 직관력에 수십년간 온갖 일과 사람들을 겪으면서 얻은 경험에서 나온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혼란스러웠습니다.
왜? 모두들 이것저것 모든 것을 시도한지 벌써 몇 년이나 됐지만 별 뾰족한 성과는 없지 않은가. 알다시피 특수하교 다녔던 옆집 갑순이도, 뒷집 갑돌이도 그냥저냥 나이를 먹지 않던가.
언젠가 말이 유창해지겠지. 언젠가 산수와 받아쓰기가 일반애들과 별 차이 없게 되겠지. 일반학교에서 일반 친구들과 어울려 평범하게 놀게 되겠지. 그러나 모든 막연한 희망 섞인 추측은 추측으로만 끝났고...우린 그때 그때 현실을 받아들이며 적응해가고 있지 않은가. 십대 중 후반과 이십대 때는 뭔가 다를 거라 또 막연히 추측하면서...
그런데 누군가 나타났다. 10세 이후로는 자폐증이 고쳐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라는 저주받을 이론을 부쉈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나는 바로 그 주인공에게 전화를 했고 그날 오후 바늘 꽂을 틈도 없이 바쁜 남편을 독촉해서 다시 전화를 걸게 했는데... 그 후 그를 직접 만났을 때 이 정도로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재차 충격을 받았는데.. 왜 이들은 실망을 했다는 거지?
멘토는 웃으며 한 마디로 설명해 주더군요.
내 아들에게서 삼십대 중반의 일반 회사원 같은 모습을 기대했을 테니까. 자신들 남동생 같은 일반인 남자.
그 후 7살 자폐 2급 아빠에게 선배맘과 그 아들을 소개해 주는 자리에서 저는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그 사람, 일반인 아니던데요...
하.....
해독으로 삼십년 간 쌓인 독소와 염증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지방과 근육도 함께 빠져나가긴 했습니다. 이십대 때까지만해도 배우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려했던 외모가 그 영향으로 변화가 있긴 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왜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처음 만났을 때, 제 눈에 보였던 놀라운 모습들이.
180cm에 육박하는 체지방이 거의 없는 장신인데 어깨, 등, 허리.. 머리에서 발 끝까지 꼿꼿한 자세가 유지됐고, 놀라운건 걸음걸이가 매우 우아하고 가벼웠다는 겁니다.
마치 발레리노처럼.
어릴 때부터 발레를 시켰나..?
나중에서야 운동의 결과임을 알게 됐습니다.
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제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인사해야지. 라는 엄마의 말에 잠깐 저와 눈을 맞추고 인사했지만 곧 이어폰을 끼고 무표정하게 음악을 듣습니다. 자폐성향이 아직 남았구나..싶었습니다.
가끔 이어폰을 빼고, 운전하는 엄마에게 지금 다니는 센터 스케쥴에 대해 묻고 네비게이션이 없어 헷갈리는 엄마에게 길을 가르쳐 줍니다.
엄마. 15m쯤 가다가 왼쪽으로요. 그 후 바로 우회전이예요.
발음은 완벽하군. 목소리톤은 완전히 정상인데? 아직 긴 문장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톤과 어조의 높낮이 조절은 놀랄 정도로 정상이군... 복지관이나 주간센터에서 만난 자폐성인들은 음색과 높낮이에서 티가 나는데..
몸이 비정상적으로 말랐다는 것(해독과정의 여파로..)과 처음 만난 사람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저는 그에게서 장애티를 거의 못 느꼈습니다.
듣고 있던 노래들은 90년대 초반의 히트송들입니다. 아마 그의 청소년기에 유행하는 것들이었을 겁니다.
우리 아이..일반인으로 치면, 몇 살 정도의 수준으로 보여?
고등학생쯤...
무슨 소리야. 여섯 살. 지금은 여섯 살이야. 이제 계속 발달하겠지만, 현재 관찰되는 심리나 행동양식은 일반인 여섯 살 정도로 측정돼.
몇 개월 후 다시 만났을 때는 초등 3학년 수준까지 올라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라고 했습니다.
며칠 전 제 멘토와 장애 부모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십사 하는 요청이 두 군데로부터 왔습니다.
십대후반부터 이십대까지 구성된 부모 모임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나이대가 다양한 쪽은 거절하더군요.
이유는 어린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뭔가를 조언해주는 것이 허무한 경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들은 이 병을 아직 몰라.언어와 인지가 최우선이며 그것을 기준으로 이 병을 판단하고 회복의 척도로 삼아. 그게 회복되면 병이 나은 걸로 오판하고, 그게 안되면 절대 행복해질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 벌써 완벽하게 일반인이 되는 것부터 생각해....
더군다나 사회성은 기적적으로 회복한 내 아들조차 아직도 극복하기 어려운, 어쩌면 영원히 안될 것도 같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장벽이야.
그래서 나의 조언은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십대 중후반이 되면서부터 현실을 파악하고 이 병을 알게 되기 시작하니까.. 부모들이 받아들이는 게 확실히 달라. 물론 그들도 아직 멀었지만. 이 병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해서 전부가 아냐.
완벽히 일반화돼서 명문고, 명문대 간 애들도 많다는데요..
한 명이라도 데리고 와보라고 해.
그 많은 아이를 일반화 시킨 엄마들은 다 어디로 갔는데? 과거 병력을 숨긴답시고 쉬쉬해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장사꾼들을 구별해내는 능력을 키워.
일반화 됐다더라, 는 소리에 현혹되지마. 30년을 넘게 자폐와 싸우면서 알게된 사실은, 자폐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거야. 네 자식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이들은 이 바닥에 차고 넘쳐.
그럼...일반화 되는 건 불가능한가요?
일반화가 뭔데? 네 자식 병을 고치려면 그 개념부터 세워. 그리고 자폐에 대해 다시 공부해.
이래서 내가 엄마들을 잘 안 만나려는 거야.
아주 예전에 일반화 개념부터 다시 세우라는 멘토의 말에 싸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화를, 아이를 '완벽하게 일반인과 어울리고 일반인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넌 이미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엄마야.
너가 꿈꿔야할 일반화란, 태어날 때부터 정상작동하지 않아 서서히 망가진 몸을 최대한 회복시켜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거야.
아이들은 손상된 기능을 복구하기 위해 감각추구를 치열하게 하지만, 결국 그것만으로 회복되는 경우는 없어. 손상이 경미하고 자연 속에서 실컷 원없이 충족하면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도 있어. 하지만 환경이 바뀌었어. 그래서 자폐가 많아진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어쨌든 최선을 다해 몸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들어줘. 그 뒤로 아이가 얼만큼 발달할지는 타고난 유전자, 환경, 각종 후속 자극에 의해 좌우되겠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하늘만이 알 거야.
멘토와 공동체가 생각하는 일반화는 완벽하게 일반인처럼 '모든 것'을 할 줄 알고, 일반사회 속에서 일반인들과 '모든 것'을 공유하며 '본질적으로 차이 없는 관계'를 맺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제대로 작동시켰던 모든 기초 기능(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애초부터 제대로 작동 안했던)을 지금부터라도 정상화시키는 것입니다.
일례로 멘토의 아들은 급속한 기능회복이 시작된 후로도, 청지각 문제만큼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이제야 정상화되어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무릎 쪽의 고유수용은 해결되지 않아 그 부분의 운동 동작은 일반인처럼 유연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활짝 웃지만, 야외 단체 놀이에서 보면 여럿이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것을 썩 즐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가 다리가 부러졌어. 오랫동안 깁스를 해서 걷지를
못했어. 뼈가 아물고난 후 깁스를 막 풀었을 때 바로 걸을 수 있어? 아니잖아. 기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아.
내 아들에게 회복의 시작은 기적이었지만, 그 후의 과정은 너도 알다시피 엄청난 고통과 주기적인 부침의 연속이었어. 차라리 인지가 이제 그만 올라갔으면..하고 바랬던 적도 있잖아.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실제로 멘토는 아들의, 급속히 상승하는 인지와 더불어 나타나는 반대급부에 상당히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시작과 결과만 보면 기적이지만...과정은 결코 기적이 아닌 것이 이 병의 회복이야. 다시 말하지만, 일반화의 개념부터 다시 세워. 그러기 전에는 넌 네 아들 병 못 고쳐.
일반화를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해.
도움이 되는 조언과 무시해야될 조언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
다시 말하지만, 이 병은 만만한 게 아니야.
하지만 이 병을 알고, 성공의 기준을 제대로 세우면 너는 너 아들과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어.
이번 글은 평소 들은 멘토의 말을 대부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저는.... 너무도 큰 도움을 받았는데(그것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다음에는 공동체에 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http://cafe.daum.net/jape1234/LT4m/241
발달장애 정보나눔터 마리안느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