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 Kohn의 그림 속 아이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언니와 여동생,
누나와 남동생,
오빠와 여동생은 서로를 의지하며
'어른스럽게'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갑니다.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얼굴로 허공을 향해 양팔을 휘젓고 내달리는 평범한 아이들과 다른, 이 '아이답지 않은 아이들'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가슴이 죄어오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얘, 네 동생이나 오빠를 아줌마에게 잠깐 맡기지 않겠니? 내가 봐줄게.
너는 지금이라도 언덕으로 뛰어 올라가 너의 친구들에게 가렴. 해가 지려면 멀었고 네겐 아직 시간이 남았단다...
그림 속의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제 딸은 똑똑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어디서든지 칭찬을 받는 아이입니다. 지효 엄마라구요? 꼭 한번 보고 싶었어요. 도대체 이렇게 착한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가 싶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어, 저는 아들의 장애를 알아채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정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거센 비난을 수시로 받게 됩니다.)
동생의 초등학교 입학을 고민하는 저에게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우리학교로 보내. 내가 잘 지켜볼 수 있거든.
동생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면, 네 친구들이 수군대거나 놀릴거야.
괜찮아. 그런 애들은 어차피 찌질한 녀석들이야. 공부도 안하고 못된 장난만 치는 애들이거든. 이렇게 말해주면 돼.
야!! 남의 동생 신경쓸 시간에 너의 그 허접한 성적에나 신경 쓰시지!!!
야무진 대꾸에 깜짝 놀랐고, 곧 안심이 됐으며,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참석한 장애 부모 모임마다 이 이야기를 꺼내 자랑했습니다. 동생을 절대 자기 학교로는 보내지 말라고 난리친다는 딸의 엄마가 동석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들은 같은 병증을 가진 아이들 중에서도 행동장애가 유독 심했고, 모든 치료사 선생님들이 발전도 없고 보람도 없는 아이라며 고개를 흔든 터라 내심 같은 처지의 엄마들에게 열패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내 아들이야 한참을 뒤쳐지지만, 너네 딸들과 달리 내 딸은 이렇게 의젓하고 대견하다구...
아들의 장애와 엄마의 좌절감이 유치한 보상심리로 변환된 것입니다. 자식 자랑은 대놓고 하지 말라는데...
선배맘은 저와 만난 처음부터 '특별히' 제 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들 문제로 정신이 없던 저에게는 익숙치 않은, 딸에 대한 관심.
'네 딸은 요즘 어때? '
'네 딸이 걱정이구나.'
'네 딸에게 좀 더 신경 써'
아.. 걘 혼자서도 잘해요.
그렇지 않아. 네 딸도 아이일 뿐이야. 아이에게 아이를, 그것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마음으로라도 돌보라고 하지마. 엄마가 또 다른 자식에게 구원받으려고 하지마.
자기 고모들처럼 하버드 의대를 갔으면 해요.
의사가 되면 제 동생에게도 도움이 될 거예요.
(사실 꼭 그런 이유만일까요..?
딸과 아들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저의 은밀한 속물적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모성을 가장한 허영과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것에 대한 보복과 보상심리... 복수를 위해 아이 둘을 희생한 메데이아와 다를게 뭐가 있을까요..)
어리석은 소리 하지마. 그 아인 그 아이대로 알아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딸아이의 미래로 보상받으려 하지마.
내겐 너 딸 얼굴에서 우울함을 볼 수 있는데, 넌 못 알아챘어?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짜증을 조금씩 내긴 했지만, 놀랄 정도로 잘 참아냈고, 또
온통 아들에게만 신경썼기에 딸까지 챙길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동생 때문에 무척 힘들었겠구나' 라고 위로하는 선배맘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제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딸아이를 보며 '나는 도대체 어떤 엄마인가' 라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걱정하지마. 너 딸은 내가 돌볼 수 있어. 공동체 엄마들이 네 딸도 함께 보살필 거야. 동생을 확실히 관리하고 제어해줄 어른들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이 아이는 평온해질거야.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너는 네 딸에게 반복 해서는 안돼.
선배맘의 둘째 아들은 뛰어난 영재였습니다.
아들에게 항상 주지시켰습니다.
너가 최소한 장관급이 되어야 네 형으로 인해 무시당한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일류대학을 가고, 영재자격으로 캐나다에 가서 하버드대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형이 일으킨 끝없는 문제로 고통 받은 엄마가 하소연하자 돕기 위해 중도포기하고 귀국합니다.
선배맘은 자신의 둘째 아들에 대한 회한이 많습니다.
얼마 전 게시판에 올라온 한 서번트 자폐아의 이야기 속에는 엄마 못지않게 고통받는 또다른 형제가 있습니다. 다른 한 아이가 고통에 허우적대는데, 재능 있는 장애 아이가 무대에서 환호받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 손으로 단추도 못 잠그는데....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치료센터에서 치료시간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엄마들은 그래도 낫습니다.
센터로, 병원으로, 각종 치료 프로그램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스케쥴을 소화하다보면, 내 등에 업기에는 너무 큰 또 다른 아이는 혼자서 알아서 잘 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들의 소규모 공동체는 매일의 일상 공동체이기에 형제자매를 함께 돌볼 수 있습니다.
함께 운동을 하고 함께 간식을 먹습니다. 엄마와 또 다른 엄마들이 항상 함께 있고, 내 동생이나 오빠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다른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합니다.
엄마들이 조금 더 신경쓰면 이 아이들의 학습공간도 한 쪽에 마련하여 숙제나 학습을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마치고 저녁에 모두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장애아들에게도 사회성 훈련에 좋습니다. 또래의 일반인 아이들과의 교류만을 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18세 지적 2급 철민이는 제 딸을 참 좋아하고, 제 딸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 자신이 만든 멋진 가방을 제 딸의 생일선물로 줬어요.)
인지교육은 10대 후반 장애아와 그보다 어린 일반 아동과 묶어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장애 아이와 비장애 형제를 함께 케어할 수 있는 곳은 엄마들이 직접 만든 곳이 가장 적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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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다는 것..
하나 더하기 하나의 단순한 산술 그 이상의 것.
발달장애 관련 게시판들에 잘 들어 가지는 않지만, 가끔 접하다 보면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우울증과 고통이 넘쳐 흐릅니다.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점들.
아무도 실마리를 주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듯한 외로움.
처음엔 숨이 막힐 듯한 막막함, 그 다음에는 뜨거운 분노, 열이 식으면 싸늘하게 전신으로 스미는 공포...
그리고 이 모든게 지나고 나면 지독한 외로움이 남습니다.
인터넷 곳곳엔 나와 같은 이들이 이다지도 많은데..
센터, 부모 모임, 각종 프로그램에만 참여해도 발달장애아 엄마들은 어디에서든 마주치는데.. 이상하게 외롭습니다.
가수 김태원의 딸이 그랬다죠.
"아빠.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축제인줄 알아.
그런데 섬처럼, 이 세상 속에는 우리 가족 넷밖에 없는 것 같아."
그나마 이 가족은 다행입니다.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자폐아인 동생 넷은 하나의 섬이라도 되니까요..
친정 부모나 시부모도, 형제나 친구도, 심지어는 배우자나 자식조차도 내 고통을 함께 하지 않은듯 느껴집니다. 더구나 소통이 안되는 자식과 거의 종일을 함께 지내니, 그 고립감은 더욱 심해집니다.
같은 방향을 가지고 일상을 함께하며 공동치료, 공동케어를 하면 이 우울한 외로움과 고립감은 놀랄 정도로 해소됩니다.
오늘은 소규모 공동체의 장점 두 가지를 얘기해 보았습니다.
허나, 세상사 사람 모여서 하는 일들이 좋은 일들만 있을까요?
다음 글에는 이 공동체의 시행착오와 문제점들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메데이아, (외젠 들라크루아)
복수심에 불타올라 두 자식을 희생시키는 비정한 모성이 신화 속뿐 아니라 내 무의식에도 웅크리고 있는지 냉정히 응시해야 합니다.
http://cafe.daum.net/jape1234/LT4m/250
발달장애 정보나눔터 마리안느님의 글입니다.
좋은 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