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센터에서 또다른 센터로 오가는 중 항상 우리의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게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뜨거운 커피를 준비했는데, 괜찮겠지요?
하고 싶은 말의 오십 분의 일도 못 했지만, 하고픈 말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드리고 싶은 말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적당하다고 봅니다.
이번 글은 주제 없이, 맥락 없이, 정리되지 않은 의식의 흐름 같은 글일 뿐입니다.
친구나 후배, 아는 언니나 동생과 동네 카페에서 긴장 없이 수다를 떠는 정도로 봐 주십시오.
사실 우리는 그런 부담 없는 정신적 휴식도 가지기 힘든 일상이니까요.. 되는대로 정리되지 않은 글입니다.
움베르토 에코 - 장미의 이름
16세 소년 수사 아드소는 50대 후반의 스승 월리엄 신부로부터 세상의 진실과 이면을 배운다.
어떤 분이 아이도 어린 것 같은데, 지금 경솔하게 굴지 말고 예후를 봐서 몇 년 후, 몇 십년 후에 이곳에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의 아들은 성년이 안된 아이입니다.
적어도 제 아들이 이십대 중반 이상은 되려니 했는데, 겨우 어린 아들 두고 치료방법이 맞네 그르네 논할 자격도 안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아드소라고 생각합니다.
장미의 이름은 뛰어난 능력과 경험의 소유자인 월리엄 신부를 통해 기술되지 않습니다.
풋내기 어린 수사인 아드소의 눈에 비친대로 세상과 사건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기에 사건의 실체가 더욱 강력하게 진실에 근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예전에 선배맘이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그 분이 기억을 하실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넌 내게서 모든 걸 배워. 난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어. 넌 내가 있으니 나보다 훨씬 낫고, 네 아들은 내 아들보다 훨씬 좋아질 거야.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지만, 앞으로 훨씬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거야. 그러면 내가 가고난 후, 내가 없더라도 넌 네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있어
그땐 심상하게 들었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가만히 떠올려 보니 희미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저의 엄마가 평소 이것저것 가르쳐 주며 했던 말과 그대로 겹치기 때문입니다.
얘, 내가 항상 네 곁에 있는 거 아니야. 지금 배워둬. 내가 없으면 고추장이든 된장이든 어떻게 맛을 내는지 누구에게 물어 볼거니.
인터넷에 다 나와.
그렇지 않아. 거기서 모든 걸 알 수는 없어. 지금 엄마 있을 때 하나라도 배워둬.
나중에. 지금은 좀 바빠.
엄마는 올 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고추장, 된장을 제대로 만드는 법을 모릅니다.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윌리엄 신부는 아드소에게 끝없이 말을 합니다. 선배맘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증상, 새로운 이론에 대해 끝없이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중 작은 부분을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들에 한하여,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 원본의 사진 링크가 유실된 모양입니다. 구글에서 유사하리라 유추되는 사진을 첨부합니다 - 신창민)
지친 군인들
가끔 이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지친 군인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의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걸어 보니, 가볼만한 길이었다고..."
오.마이.갓.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매우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축복 받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그런 행운을 가지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뭐, 장애아를 키우셨으니, 역시 나름 힘드셨겠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가볼만한 길' 이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부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배맘은 가끔 ' 이 넨장할 놈의 병' 이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망할 놈의 병이라고 하지요.
선배맘은 30년 넘게 이 병에 시달리고 그것과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끝은 알 수 없지만, 이제야 승기를 잡은 것처럼도 보입니다.
선배맘에게 지나간 시간은 '죽어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입니다.
저 역시 과거와 현재를 절대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통은 격렬하고 아픔은 처절합니다. 지난주 선배맘께 상담하러 오신 12살 아이 엄마도 그랬다는군요.
지금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낫다고, 한참 힘들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엄두가 안난다고요... 그 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 겪어본 사람으로서 우리는 절절히 공감합니다.
넌 내가 겪은 것을 겪어선 절대로 안돼. 사람으로서 감당할 일이 아니야. 넌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이 모든 걸 반복하라면....어우, 미쳤어? 넨장할, 난 죽어도 못해!!!
선배맘이 제게 '사람으로서 겪을 게' 아닌 시간을 절대 경험하지 않길 바라듯, 저 역시 제 자신과 여러분이 선배맘의 경험을 최대한 피할 수 있길 바랍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초인 수업'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요.
어느날 고독에 잠긴 너에게 악마가 다가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을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되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다시 되풀이되어야만 한다. 모든 것이 동일한 순서로 말이다'
뭐, 영화 '사랑의 블랙홀' 이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우리가 겪은 모든 것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건데..... 저는 그 악마에게 고상하고 품위있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이 미친 새꺄!! 저리 꺼져!!!
어린 새끼는 엄마의 꼬리를 놓칠세라 꽉 물고 종종걸음 칩니다. 이 어린 새끼도 언젠가는 엄마의 꼬리를 놓고 혼자 달릴 텐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제 글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 서른 세 살 병철씨는
말을 무척 잘합니다. 네이버 정치란과 스포츠란 기사를 검색해서 읽고 화제로 삼는 게 취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발 정리를 못 합니다. 간단한 물건을 살 때조차 돈 계산이 안됩니다. 신발끈을 못 매고 병 따는 것도 힘듭니다. 결정적으로 사회성 기능의 기초가 되는 '눈치' 가 없습니다.
자산가이자 전문직 종사자인 부모는 병철씨를 위해 수십억을 공증해 두겠다고 합니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병철 씨는 과연 물려받은 수십 억의 재산으로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엄마가 죽으면 병철씨는 바로 시설로 가게 되리라는 것을.
말을 잘하는 것과 자립은 별개의 일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떨까요. 십대 이후로 나이가 든 자식을 둔 엄마들은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어느 정도 기능하고 있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으며, 가끔 대견한 짓도 하는 자식입니다만, 그의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습니다. 아이 옆에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완전히 지워보십시오.
자.. 내 또 다른 자식들인 그의 형제 자매가 대신 해주리라는 기대는 접자구요..
삼주 전, 선배맘은 아들과 함께 병원을 갔습니다. 거기서 오십대 발달장애인(외관상 중증은 아니었다고 합니다)을 만나게 됩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하지만, 실은 자폐성 장애인이라는 걸 선배맘은 곧 알아차렸죠. 육십대가 된 누나들이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아들을 돌봤던 어머니는 이번에 요양원에 들어갔습니다.
누나들이 네 명이나 있지만 그가 분노발작이 심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심하지 않더라도, 또 아주 가끔씩 오더라도 이 분노발작을 견딜 사람은 엄마 외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할머니가 된 누나들은 선배맘의 아들이 그들의 동생과 같은 발달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놀랍니다.
아흔이 넘도록 아들을 돌볼 수 있었던 엄마는 운이 좋은 엄마이며, 오십대에 이르러서야 형제들에 의해 병원에 수용되는 아들은 그나마 복 있는 장애인입니까?
갑작스런 고장.
그러나 그동안의 진행을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던 것 뿐이다.
지난 수요일 오전. 제 차가 운행 중에 순간 시동이 꺼졌습니다. 당황했지만, 일반 도로 위라 서둘러 시동을 다시 넣어보니 힘겹긴 해도 겨우 작동을 합니다.
근처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갔는데, 주차장에 가기까지 시동이 서,너번은 더 꺼집니다.
겨우 안전한 곳에 세우고 보험사에 전화를 걸려다가 주위에 기아 서비스 센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그곳이 레커차를 보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20분 정도를 쉬고 조심스럽게 시동을 거니 좀 더 힘있게 시동이 걸립니다. 5분 여 거리에 있는 센터까지 문제 없이 가기만을 바랬는데, 다행히 잘 도착했습니다.
수리 기사는 본넷을 열더니 금방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라디에이터가 갔는데요?
어제밤까지 전혀 이상없이 잘 달렸어요.
여기 금이 갔어요. 물이 다 샜고, 열이 엄청났을 겁니다. 문제는 이 부분을 갈아도 엔진에 영향이 갔다면 비용이 몇 배가 될 겁니다.
원인이 뭐죠?
노후죠. 그동안 계속 안에서 진행이 됐는데, 오늘 한계에 이른겁니다. 터질 때까지는 잘 달리는 것처럼 보여요.
이걸 갈지 않으면 단 하루도 못 탑니다.
어제까지 아무 이상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문제를 일으키고 이제 1m도 못 달린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기사는 운전석 문을 열고 제게 계기판을 보여줍니다.
온도계를 보세요. 최고 눈금을 가리키고 있죠? 모르셨나요?
몰랐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장님입니다. 계기판에서 제가 늘상 보고 체크하는 것은, 연료와 주행거리였을 뿐입니다. 그냥저냥 잘 달리는 차의 온도를 체크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문제가 더 심각할지는 수리해봐야 압니다.
다행히 엔진손상은 크게 없고 라디에이터만 갈아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차는 수백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시간이 가면 어디에서 문제를 일으킬지 모릅니다. 외관이 멀쩡하다고 안심하시면 안돼요. 미션도 기능이 떨어져 있네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손은 보셔야 할겁니다.
23만원 나왔습니다.
사람의 몸은 제 차보다 더 복잡하고 유기적입니다.
우리 아이의 몸은 처음부터 결함이 있고, 그 결함이 야기하는 문제점들은 점점 진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댓글을 보면 '지금은 건강하기라도 해서 안심인데, 커가면서 문제가 생기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관찰을 해야 합니다. 사춘기 이후로 문제점들이 점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뿐인 거죠.
제가 계기판에서 관심있는 것만 체크하듯 아이의 부분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관리한다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http://cafe.daum.net/jape1234/LT4m/258
발달장애 정보나눔터 마리안느님의 글입니다.